해피캠퍼스,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 (feat. 논문저작권과 학술정보업체)
인문학계에서는 지난 일주일간 해피캠퍼스 등의 리포트 거래 사이트에 반대하는 서명이 돌았다. 여러 학회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학회 연대 모임에서 각 학회에 전달해서 며칠만에 생각보다 관련 전공자들에게 널리, 빨리 전달된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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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거래사이트, 학생 표절 조장·지식재산권 인식 왜곡"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학술 지식 공유를 주장하는 학술단체·연구자 모임 '지식공유연대'는 17일 '해피 캠퍼스', '레포트 월드' 등 리포트 거래 사이트 성업과 관련, 학술논문 거래 반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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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만 봐서는 뭐가 문제라는건지,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불분명할 수 있다.
리포트를 사고파는 행위는 당연히 권장할만하지 않지만, 리포트 거래 사이트 자체를 규정하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뭘 어떻게 규제하자는걸까? 사실 서명을 받고 있는 성명서를 봐도 이 부분들은 상당히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식공유연대의 이번 성명과 서명운동을 리포트 거래사이트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려는 시도라기 보다 선언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까놓고 말하자면, 연구자들이 분노하고 있는 부분은 학부생들의 레포트 거래 같은 게 아니다. 물론 통탄할 노릇이지만, 컨닝과 표절은 어차피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이다. 진짜 빡침 포인트는 연구자들이 출간한 논문과 학회 발표문들이 저자의 동의 없이 해피포인트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잘 팔리지도 않을 거라는 점에서 나는 그다지 화는 나지 않는다
여기서 해피캠퍼스를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타겟은 DBpia나 Kiss 같은 학술정보업체이다. 이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출간된 논문의 유통 체계와 저작권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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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논문의 저작권자가 아니다
놀랍게도, 출간된 논문의 저작권자는 그 논문을 쓴 저자가 아니다. 이건 해외 학회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다. 논문의 저작권자는 해당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의 소유자, 즉 학회가 가지고 있다.
학회를 통하지 않으면 논문의 출판이 불가능하다. 아니, 종이로 찍어내서 ISBN을 받는 행위는 가능하지만, 논문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논문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연구자의 실적은 공인된 학술지(등재지 및 등재후보지, 해외의 경우 SCI)에 실린 논문의 편수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전공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국내 인문학 어문계열의 필드에서는 이공계와 달리 논문의 인용지수(Impact Factor)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할 때, 논문의 저자는 학회에게 저작권양도서에 도장을 찍어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학회는 그 논문의 저작권을 어떻게 행사하는가. 각 학회마다 계약하고 있는 학술정보엄체가 있다. 대표적으로 DBpia와 KISS, 그리고 교보 Scholar 등이 있다. 학회는 계약을 통해 학술정보업체에게 판매를 위임하고, 그 대가로 일년에 수십-수백만원의 저작권료를 받는다. 그리고 학술정보업체는 자사의 사이트를 통해 유료로 논문을 판매하고 수익을 얻는다.
이 지점에서 논문의 저자인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불합리함을 느끼게 된다. 해외 학회들과 달리,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는 일반적으로 게재료와 심사료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보통 수십만원의 비용을 학회에 지불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비출판이나 다름없는데(...) 논문의 저작권은 학회로 넘어가고, 학회와 학술정보업체는 다시 내 논문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버는 꼴이다.
더구나 지난 수년간 학술정보업체의 횡포도 점점 커져왔다. 일반적으로 학술정보업체는 각 대학의 도서관에 연단위로 구독료 계약을 맺고 그 구성원들에게 데이터베이스의 접근권한을 부여한다. 즉, 대학에 속한 연구자와 교수, 학생들이 편당 만원에 달하는 논문을 개별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대신 학교 도서관에서 패키지로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구매해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술정보업체들이 구독료를 야금야금 올려, 급기야 각 대학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서비스를 중지하는 사태가 수차례 벌어졌다. 이건 대부분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치명적이다.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논문은 보통 수십 편에서 수백 편에 달하므로 이걸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수익은 커녕 돈을 들여가며 작성한 논문을 학술정보업체가 틀어쥐고 비용을 올려 결국 연구자들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져버린 것이다.
이게 지난 몇년간 끊임없이 문제가 된 부분이고, 이제 국가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지원사업을 빌미로 각 학회들에게 출판하는 논문의 원문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공개하라는 요구를 시작했고, 많은 가난한 학회들이 이에 응했다. 내가 속한 필드를 기준으로 이제 논문의 6-70%는 KCI에서 원문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조만간 각 대학 도서관사이트에서 KCI와 연계하여 직접 검색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대부분 논문들의 오픈엑세스가 실현되는 셈이다.
그래서 해피캠퍼스와 학술정보업체가 무슨 관계인가?
간단하다. 학회로부터 논문의 독점적 판매 권한을 부여받은 학술정보업체는 다시 해피캠퍼스에게 논문의 사용권을 판매한다. 그 덕에 해피캠퍼스에서도 학술논문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학술논문의 수요자인 연구자들은 앞서 말했듯 대학도서관을 통해 논문을 구하기 때문에 굳이 해피캠퍼스에서 논문을 구입할리는 없고, 아마 우연히 관련자료를 찾던 학부생 포함 비연구자들이 해피캠퍼스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그 수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굳이 해피캠퍼스를 타겟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기는 한다. 대중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으면 주장의 포인트를 보다 명료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논문의 저자가 저작권을 소유하지 못하는 학계의 구조이다. 이건 해피캠퍼스를 탓할 것도 아니고, 학계 자체의 문제이다. 단, 이게 또 연구자가 저작권자로서 경제적인 수익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독해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위험하다. 학술논문은 그것이 학계에 기여해야만 의미있는 공공재이다. 논문 출판은 애초에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나의 연구성과를 위해서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학자들의 논의를 인용하고 또 인용되면서 지식의 지평을 넓혀갈 때 학술논문의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절벽을 맞아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인문계 연구자의 유일한 안정적인 자리인 정규직 교수 TO도 거의 줄어들고 있어서 지금 인문학 연구자는 갈수록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더욱 그런 경향이 강화될 판에 국가지원을 받아서 내는 결과물인 논문을 팔아 수익창출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학술저작물은 오픈엑세스를 통해 공공재로 취급해야지, 저작권수익을 연구자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학술논문을 다운로드 받는 법
국내에서 간행된 거의 모든 논문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RISS에서 통합검색할 수 있다.
이곳에서 논문을 검색하면 해당 논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KCI, 혹은 학술정보업체의 링크로 연결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KCI에서는 무료로 논문이 다운로드 가능하다.
대학에 재학중인 경우,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찾아보면 '교외접속'이라는 걸 제공한다. 해당 기능을 통해 RISS에 접속하면 도서관과 협약을 맺고 있는 학술정보업체에서 제공하는 논문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무료는 아니다. 해당 비용을 내가 속한 대학에서 지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