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전공 대학원생들이 한번쯤 스치게 되는 아르바이트가 바로 수시 시즌의 논술/면접 대비 특강 강사이다. 단기간에 상당한 액수를 뽑을 수 있다보니, 평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던 원생들도 이 시즌에는 잠깐 학원 강사로 뛰곤 한다. 나는 사실 학원 경력도 있지만 논술 과외를 10년 가량 했다. 대학 자체를 논술 전형으로 가기도 했고, 대학 합격 이후 곧장 과외를 시작해서 박사 수료 할 때까지 계속 했다. 그 이후로 몇 년 쉬다가, 2020년 입시 때 단기로 논술/면접 학원 특강을 뛰었다. 당시 아무리 돈 때문에 하는거긴 하지만 사교육 시장에서 더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과 함께,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논술/면접 대비반에 돈을 갖다 바치는 수험생들을 너무나 말리고 싶었다. 단, 이 글은 인문계 한정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공계는 내가 모른다.
1. 대입 논술/면접에는 정해진 답이 있다
학생들은 대입 논술/면접이 학생의 창의성과 주관을 시험하는 과정이고 그러므로 무척 주관적인 채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입 시즌이 오면 학교에서는 이공계/인문계로 나누어 교수들을 차출하고 모처에 감금해서 문제 출제를 한다. 인문계의 경우 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공 교수님들이 출제를 들어가게 되는데, 이 분들이 합의를 통해 문제를 결정한다. 자 그럼 어떤 문제가 나올까? 인문사회계 전공 학생이라면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교수님들이 생각하는 주제들, 다시 말해 굉장히 클래식한 주제들이 주로 나온다. 대표적으로 개인주의/공동체주의, 민주주의의 의사결정과정, 경제적 분배의 문제 등등. 여기에 더해 간혹 학생들을 고문할 셈인지 학계에서 5-10년 전쯤부터 널리 통용되는 새로운 이론 같은 게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문사회학계의 문제의식이나 기본적인 전제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문제와 지문을 대강 눈으로 훑는 순간 이 문제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답안을 요구하고 있는건지 각이 나온다. 대부분의 문제는 특정한 정답을 도출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리고 학계에 있는 교수들의 시각으로 출제한 문제이기 때문에, 학계의 논의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강사의 문제 풀이는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게 입시 논술/면접 사교육 시장의 맹점인데,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검증하는 수능시험과 달리 입시 논술/면접은 소수의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만 참여하는 폐쇄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다 일회적인 성격이 크다보니 비싼 돈 받는 학원들이 엉터리로 가르쳐도 티가 안난다. 어차피 특강은 기간도 1-2주에 불과하고, 애초에 학생들도 자신의 당락에 그 짧은 특강이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지 않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점을 노려서 본인들도 못 푸는 문제를 가르치는 강사들을 데려다놓고 추수걷듯 돈을 받아먹는 학원도 너무 많다.
2. 핵심은 독해력이다. 그리고 그건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논술은 물론이고 면접도 주어진 지문을 읽고 답을 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문제들의 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답이라는 것도 뭔가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지문(들)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읽어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들이다. 그걸 뛰어넘어 학생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창안하라고 요구하는 문제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형식적인 요구사항일 뿐이다. 지문 독해만 제대로 해도 80%는 합격이라고 본다. 실제로 채점을 해보면 문제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답변을 내놓는 것은 대체로 4,50명 중의 한 명 꼴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이건 학부생들의 중간기말 답안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독해력은, 단기간에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대입을 보기까지, 20여 년 간 길러온 독해력 싸움이다. 물론 타고난 성향 자체도 문제이고, 독해력도 근육과 같아서 어려운 텍스트와 씨름하며 읽어갈수록 늘기 마련인데 스스로 책을 좋아하고 찾아 읽지 않는 이상 한국의 교육과정은 그렇게 텍스트와 씨름하며 독해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대체로 독해력도 좋긴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최소 2개월에서 6개월 가량 훈련을 시키면 독해력도 많이 늘기는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어려운 텍스트와 부딪혀야 하는 이 과정 자체가 사실 괴로운 일이라서 시켜도 제대로 따라오는 학생 자체가 거의 없다. 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리딩그룹을 해도 본인의 독해력 수준보다 높은 텍스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덤벼드는 사람은 소수이다. 하물며 길어야 2-3주에서 짧으면 며칠인 학원 특강에서 독해력 향상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3. 학원은 불안감 장사이다
사실 학생과 학부모도 모두 알고 있다. 그 며칠간의 단기특강이 당락을 결정지을 리가 없다는 것을. 다만 그거라도 안하면 불안하니까 돈을 지불할 뿐이다. 예행연습한다 생각하고. 나도 십수년 전에 그랬다.
예행연습 삼는다는 말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논술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원고지 분량을 채워보는 연습, 면접이라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는 자체가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학원 특강은 예행연습치고는 너무 비싸고, 그나마 제대로 된 예행연습조차 못 시켜주는 수도 있다.
특강 학원비 정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집안이라면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학원비가 가계 경제에 너무 큰 부담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해도 아무 문제 없다. 학원 특강은 당락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단, 단기 특강이 아니라 최소 2개월 이상 논술 수업을 수강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면접은 논술을 구술로 하는 형태이고, 기본적으로 지문이나 독해력을 요구하는 것은 논술과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논술 수업 하나면 커버할 수 있다. 학생의 독해력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주 1회 수업 기준으로 보통 2개월이면 문제파악하고 글의 틀이 잡히는 정도로는 올라온다.
4. 최고의 교재는 기출문제이다
학원 자체 문제를 사용한다는 학원을 걸러라. 이거 정말 중요하다. 밑줄 쫙 별표 두 개. 위에서 썼듯이, 입시 문제는 대학 교수들 여럿을 감금해두고 출제한다. 그런 문제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박사 학위자나 그에 준하는 스칼라십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학원 자체 문제를 만든다면서 학부생들을 데려다가 얼기설기 말도 안 되는 문제와 해설을 만드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입소문으로 꽤 유명하다는 교대의 모 학원이었다. 입시 감각이 살아있는 갓 입학한 학부생들을 기용한다는 명분으로 명문대생들을 쓰는데, 명문대건 뭐건 세기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학부생은 학부생의 한계가 있다. 본인들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지 학부생 강사한테 학부생인 거 티내지 말라고 주문하던데...
논술/면접도 대부분 클래식한 주제 몇 개가 돌아가면서 계속 나오는 편이라 각 대학의 기출문제를 모아서 풀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같거나 유사한 지문이 여러 학교에서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학 기출문제의 경우 대부분 출제의도와 채점 기준도 같이 공개되기 때문에 강사들도 크게 잘못 가르치지 않는다. 대치동의 대형 학원들에서 개설하는 논술 수업의 경우가 오히려 FM대로 기출문제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논술 작성 TIP
- 다른 거 없다. 기출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 원고지에 작성해보고 국어 선생님께 첨삭을 부탁해라. 정해진 답안 작성 시간도 준수해야 한다. 학교 선생님 가운데서도 특히 논술 지도를 많이 하는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게 좋다. 원고지는 200자를 사용하지 말고, 문구점에 가면 600자 혹은 1000자 원고지를 쉽게 구할 수 있다. 1000자 원고지를 사용하면 시험 환경에 가장 가깝다.
- 글은 무조건 두괄식으로, 내용이 전환될 때 적절한 단락구분은 필수적이다. 대체로 300-400자를 한 단락으로 삼으면 적절하다. 1000자 이상의 답안인 경우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갖춰주고, 600자 이하일 때에는 본론만 간결하게 쓰면 된다.
- 분량 채우려고 중언부언 하지 마라. 학생들은 좋은 트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티 엄청 난다. 내용이 없는 문장은 단 하나라도 답안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 논술 문제에는 언제나 답이 있고, 그 답은 대부분 지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해서 쓰라는 것이다. 지문과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절대로 분량이 남지 않는다. 그래도 분량을 못 채우겠다면, 차라리 짧게 써라. 채점하는 교수는 짧은 글을 좋아하고, 아예 글을 안쓰다시피 한 게 아니라면 분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용없는 문장이 중간중간 끼어들어가 있는 것이 훨씬 더 마이너스이다. 아, 분량이 미달하는 글보다 더 나쁜 건 긴 글이다.
-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지문을 요약해서 써라. 단, 지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적는 순간 탈락이다. 논술에서 "요약"이란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을 말한다. 즉, 지문을 내가 이해한데로 재구성해서 다시 쓰면 된다.
-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법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대체로 문법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 하지만 기본적인 맞춤법이 너무 눈에 거슬리면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긴 하다. 그래서 시험 전에 원고지에 글을 한 번 써보는 게 중요하다. 요즘 학생들은 보통 원고지 작성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두어번만 원고지에 써서 국어선생님께 검토받으면 많이 틀리는 부분은 금방 교정할 수 있다.
- 글씨체야말로 아무 상관없다. 그러나 간혹 정말 해독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서, 그러면 채점하다가 정말 읽기 싫기는 하다. 예쁜 글씨보다는 흘려쓰더라도 큼직큼직한 글씨가 읽기 편하다. 답안지를 채점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노안이 온 나이라는 걸 기억하자.
면접 TIP
- 기본적으로 지문에 대한 이해와 답변은 논술과 같다. 논술과 문제 유형이나 주제가 비슷하기 때문에 논술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문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데로 다시 설명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답변을 해나가면 된다.
- 면접위원을 너무 어려워 할 필요 없다. 거기 앉은 교수들이 보기에 대입을 앞둔 학생들은 마냥 애기고 귀엽다. 잡아먹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는 편이니 너무 겁먹지 말고 면접위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 면접태도나 인사 같은 건
누가 봐도 후레자식 같이 행동하지 않는 한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말이 막혔을 때 또랑또랑하게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이런 거 안 해도 된다. 오히려 애들이 너무 다 똑같이 그러니까 징그럽다는 교수님들도 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된다. - 학생부 면접의 경우 출결사항이나 장래희망, 전공 관련 활동 같은 건 아무 상관없다. 교수들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1학년에는 꿈이 교사였다가 2학년때 통역사로 바뀐다고 왜 바꿨냐고 안 물어본다. 인생이 다 그렇다는 것을 교수들은 열 아홉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 중요한 건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나 작성한 보고서 같은 자기주도 활동의 내용이다. 여기서는 프로젝트의 내용과 결과, 가설 도출 과정과 참고한 문헌들까지 의외로 세세한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면접 보러 가기 전에 학생부를 보며 내용을 잘 숙지해야 할 것은 이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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