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대학원 입시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국내 인문학 전공이라면, 당락은 그저 그때그때의 TO에 달려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TO가 꽉 차는 경우는 잘 없지만, 간혹 사람이 몰리는 때가 있으면 탈락자가 나오곤 한다. 그뿐이다.
국내 인문학 전공 대학원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인문학 전공의 학문후속세대란 건 실질적으로 멸종 직전이다. 전공에 따라 새로 진입하는 대학원생이 수 년 동안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내 탑 대학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10년 이상의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될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인문학 전공에 쉽게 발을 들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다. 간혹 경쟁률이 센 학과가 있다는 풍문은 들었지만, 내가 속한 학과도 이 분야에서 국내 탑이라 할 수 있고 원생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심한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몇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희안하게 몇 년에 한 번씩 유독 지원자가 몰리는 때가 있다. 이 경우 자대생 출신이 먼저 뽑힌다. (최근에는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경영대 등 인기있던 학과들의 대학원생 지원자가 대폭 줄어들면서 등록금 수입이 급감하자 인문계 대학원생 TO가 오히려 널널해지긴 했다. 내가 속한 학과에서는 수년 째 지원자를 100% 합격시키고 있다)
혹은 학과 교수진이 열정에 넘쳐 입시에 높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싹수가 보이는 학생만 합격시키겠다는 기조로 수 년째 타이트한 입시를 진행하는 학과를 알고 있다. 이런 경우는 당신이 아니라 누구라도 입학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까놓고 말해서, 원서만 내면 합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면, 그저 운이 나빴겠거니 하고 다음 학기에 다시 지원하면 된다. 대학원 학위과정은 어차피 기본 수 년이 걸리고, 한 학기 더 빠르고 늦고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다. 자존심 상해하지 마라.
그래도 불확실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면, 지도교수로 삼고 싶은 교수에게 미리 컨택하는 것이 좋다. 어려운 것 아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교수의 이메일 주소는 오픈되어 있다. 대학원에 가고 싶고 한 번 인사드리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면 모든 교수가 환영한다. 해당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세미나가 있다면 먼저 참가하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좋다. 입학 전부터 본인 세미나에 출입하며 어울린 학생을 뽑지 않을 교수는 없다.
※ 참고: 지도교수 정하는 법
[인문학 박사생이란 것의 의미] 3 - 지도교수편
대학원생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지도교수다. 지도교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원생이 노예로 불리는 까닭, 잊을만
intjresearcher.tistory.com
대학원 면접을 위한 조언:
까놓고 말해서 솔직히 이것도 별 의미 없다. TO만 있으면 뽑히고, 보통은 충분히 있다. 정장 차려입고 갈 필요도 없다. 소수의 예외는 있으나, 인문학 전공 교수들도 대체로 옷은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고, 인문학 전공의 드레스코드는 국적불문하고 "아무거나 후줄근하게"이다. 답변 잘 못했다고 자책하지도 마라. 아주 사이코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당신이 답변한 내용 자체는 맞든 틀리든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학원 입학 면접은 당신이 전공지식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가능성이 얼마나 보이느냐에 방점이 있고, 그건 전체적인 태도에서 묻어나기 마련이라 어차피 맘먹고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것도 아니다. 편하게 하자.
인문학 전공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기는 정말 쉽다. 원서만 내면 된다. 하지만 학위를 받고 졸업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 가운데 최소한 절반 이상은 공부를 중도 포기한다. 공부 자체가 힘들어서일수도, 대학원 문화가 불합리해서거나 혹은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일수도 있다. 대학원 입시는, 대학원생의 여정에서 첫번째 장애물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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