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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투병기

INTJ-A는 왜 우울증에 걸리는가 (feat. INTJ 빙고)

MBTI 따위, 혈액형과 같은 거라고 쿨하게 넘기려 했지만, 그렇든 아니든 나는 전형적인 INTJ-A 유형에 해당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INTJ 자체가 드문 유형이고 그 중에서도 여자는 더더욱 드물다는데, 과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는가에 대한 내 오랜 의문이 조금 해소되었다(...) 

어, 그래 나 INTJ다

많이들 인용하는 "16 Personalities"의 INTJ 유형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한줄한줄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 솔직히 이거 티내면 안되는데... 이 블로그가 본캐의 지인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하지만 솔직해지도록 노력하겠다. 나와 "견줄 만한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찾는 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정말 심하게 겪는다. 연애도 힘들다. 대부분 날 무서워해 다행히 난 최근 몇 년간 나보다 훨씬 똑똑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서 더 이상 저런 외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INTJ는 확실히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매우 신랄한 조롱과 비판을 일삼는 냉소주의자" 맞다. 나는 나 스스로가 굉장히 세계에 대해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냉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아니, 현실을 직시해야 그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거 아닌가. 또한,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화나 역사적 성취는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은 뛰어난 개인의 결단과 행위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엘리트주의자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르고 근시안적이며 자기 잇속만 차"리다가 망한다고도 생각한다. 경험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까놓고 말해서, 사람들이 대부분 근시안적이고 게으르고 이기적이기 떄문에 내가 운신하기 편하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근시안적이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면이 있지만 세상만사 상대적인 거니까.    

 

 

"신비로운 아우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에 찬 자신감"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한다. 카리스마적이라고도 자주 불린다. 사람들 만나는 거 싫어하지만 팀작업만 하면 리더를 맡게 되는 INTJ가 바로 나다. 때로 내 계획이 사회상규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 그런 경우가 꽤 많다 - 재정비 하며 수위를 조절하기도 한다. 나의 "업무 스타일을 좇아오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내 속도를 제대로 따라오는 사람이 없긴 한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면 멱살 잡아 끌고 가고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면 최대한 관대해지려고 노력한다.  

 

 

비상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나서진 않지만, 문제상황이 생겨버렸을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머리 위에서 수를 두며 허를 찌르는 기술로 상황을 유리하게 몰고" 가긴 한다. 이게 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상황을 조작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내가 주로 이용하는 건 대다수의 소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신주의이다.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 말이다,  단, 내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런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 또 난 윤리기준이 명확하고 그걸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전제하는 "사회상규"는 아니라서, 나보다 타이트한 도덕적 기준이 있는 동료들과는 일을 할때 가끔 부딪히긴 한다. 

내가 너무 건방지게 써놨나 싶긴 하지만, 거만함도 INTJ의 성격적 특성이자 결함이다. 이것도 아마 INTJ들의 공통점이겠으나, 사실 나는 내가 특별히 잘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에는 의외로 멍청한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을 뿐이다. 내 눈에는 빤히 보이는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엉뚱한 예상을 내놓으며 헛발질하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 무지할수록 쉽게 비관주의로 빠지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다보면 누구라도 이렇게 된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휴머니스트고, 사람들에게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긴 하지만 애정을 잃은 적도 없다. 이것도 결국 #냉소적인_이상주의자_INTJ)

 

INTJ 빙고. 거의 다 해당이다.

 

 

자신에게 가혹한 INTJ 

INTJ 유형은 자신과 타인에게 기준이 높아 때로 자신에게 가혹하고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사실 나는 INTJ 중에서도 여유있고, 자기 생각을 존중하고, 걱정이 없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A형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성취가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나를 몰아가본 경험은 때때로 있었지만, 내가 마음 먹고 몰두하면 내 목표치에는 금방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항상 있었고, 또 그만큼의 성취가 어렵지도 않았다. 운좋게도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절해본 경험도 없다. 그래서 항상 자신감이 충만한 내가 우울증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내 기준치를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 순간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사실 외부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내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나만 알고 있다. 그 순간부터 나는 1년 여간 우울증 약을 먹으며 새로운 기준치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사실 개인의 정신건강과는 별개로 사람의 성장은 높은 자존감보다는 낮은 자존감에 추동되는 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새로운 기준치에 내가 만족할만큼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내 능력으로 불가능한, 타고난 역량의 문제라는 것도. 그래서인지 상당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우울증 환자이다.

그 외에 몇 가지 외부 요인이 겹치기도 했고, 내가 원래 내 감정을 돌아보지 않고 묻어두기만 하는 성격인데다가, 또 원래 조울증 인자를 가지고 있던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최근에 하고 있긴 하지만, 여하간 내 우울증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랬다: 내 자아이상이 파괴되었고,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아마 자신에게 보다 가혹한 INTJ-T 유형이라면 우울증 환자 비율이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INTJ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구축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정련해가는 편이라 자신의 한계로 인해 불가능에 직면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취약해지기 쉬운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갈망이 무척 크고, 그 공간 안에서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이것도 통제에서 안정감을 얻는 성격이라 그런 것도 같다. 사회생활에서는 내가 기획하는 행사 같은 것에서 작은 거 하나라도 모두 플랜을 짜는 편이다. 그래서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나를 무척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정작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수식어가 꼼꼼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가족이나 연인같은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통제력을 발휘하려 들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 자체로 인정하는 사람인 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