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의학적인 소견이 아닙니다. 비전문가의 단상에 불과합니다.
누구보다 에너제틱하고 진취적이고 거칠 것 없이, 때로는 사회나 권력에 맞서기도 하며 큰폭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 단단해보이는 그들도 사실 우울증에 취약하다. 나도 (그렇게까지 큰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런 편이고, 그런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그런 집단에서도 우울증은 알고보면 무척 흔한 질병이다.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증상보다는 변형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정서적으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휩싸이기보다 바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가운데 어딘가 다른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나같은 경우는 호흡곤란이 중심인 변형우울증(가면우울증)이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목격했다. 물론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도 많다.
어쩌면 정치인들 가운데에서도 우울증 환자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태생적으로 어느 정도 뻔뻔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값이 높은 사람들이 정치인을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명분을 높이들면서 동시에 이꼴저꼴 온갖 꼴을 다 보며 그 안에서 같이 뒹굴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일리 없다. 내면에 원칙과 신념을 간직한 정치인일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고.
어느 지인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우울증이 정말 흔한 질병이었구나. 어쩌면 현대인들의 대다수는 우울증환자가 아닐까. 그건 이 사회가 병리적이라는 의미일테고, 분명 이 사회는 어느모로 보나 병리적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처리할 정보량이 너무 많아진게 그 이유는 아닐까.
그놈의 교통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너무 넓은 영역을 오가며 너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산다. TV와 인터넷에서는 하루종일 각종 뉴스며 정보가 쏟아진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 모퉁이에 걸친 나라에서 살면서 북극의 펭귄과 북극곰의 운명을 염려해야만 하는 세계이다. 불과 200년전만 하더라도 펭귄이나 북극곰은 전설의 땅에 사는 신화적인 동물로도 알려져있지 않았는데 말이다.
과다한 정보처리가 디폴트가 되버린 상황에서, 평균보다 활동적으로 살면서 평균보다 큰 스케일의 일들을 다루는 사람들은 당연히 평균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분노나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은 일단 미뤄놓게 되기도 한다. 동료가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당시 우리가 하던 싸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제일 먼저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린 적이 있다. 뇌가 배겨내는 게 이상한 일 아닐까. 워커홀릭이 우울증과 번아웃증후군으로 귀결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 무언가를 해내려면 함께 미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보이지 않아 알면서도 자진해서 그 굴레로 걸어들어가는 게 또 이러한 자들의 운명이다. 나는 언젠가 끝내 나를 죽이게 되지 않을까, 매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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