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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투병기

명상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심장두근거림/호흡장애/불면증)

내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기분장애보다 신체화 증상이었다. 다시 말해, 우울하거나 무기력하다기보다 스트레스성 부정맥(심장두근거림)이나 호흡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입면장애가 찾아온다. 

특히 내 최초의 증상은 스트레스성 부정맥이다. 최초의 증상은 20대 초반으로, 당시 잦은 심장두근거림을 겪었지만 그땐 그저 수면부족과 과로려니 하고 넘겼다. 그러다 우울증이 본격적으로 발병했을 때 심장두근거림과 호흡불편감이 몇 달 넘게 24시간 지속되며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호흡불편감은 병원을 다니면서도 1년 넘게 계속되었고 아직도 조금 남아있지만, 심장두근거림은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첫날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증상이기도 하다. (심장 질환과 부정맥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 심장두근거림이 나타나는지 보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거나 격한 움직임 등 활동 직후에 심장 두근거림이 심해진다면 심장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부정맥이 스트레스성은 아니다.)

최근 며칠간, 과거의 우울증 트리거를 상기시키는 일이 있어 내내 불안한 상태였다. 안밖으로 슬픈 소식들이 들려와 더더욱 그랬다. 하루종일 부정맥 증상이 있고, 잠자리도 뒤숭숭했다. 호흡도 계속해서 불편감이 있었다. 수면보조제의 덕분으로 잠은 들었지만 얕은 수면끝에 악몽을 꾸고 깨어난 새벽, 다시 병원을 찾아야하나 하다가 문득 명상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심리요법보다 약물요법을 신뢰하는 편이기는 하다. 내가 변형우울증(가면우울증) 환자라 더욱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최근에는 우울감으로 발전하기는 했으나, 내가 인식한 최초의 증상은 그저 신체적인 불편함들이었고 그 증상들은 약을 먹으면 곧장 나아지곤 했기에 문제가 있으면 약을 먹으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약물은 결국 대증요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가 나의 정서나 스트레스를 무시해 버리고 계속해서 나를 몰아가는데서 시작한다.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증상들은 약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물리적 증상으로 발현한 그 스트레스들은 결국 어디 가지 않고 내 속에 계속해서 갇혀 있고, 틈만 나면 고개를 내밀려 한다. 근본적으로는 나를 이완해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상담은 아니다. 한때 우울증과 별개의 개인적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으로 꽤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우울증 진단 이후에 시도해본 상담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상담사와 궁합이 잘 안맞았던 까닭도 있었지만, 나는 언어를 분석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언어화하는 능력이 극히 취약한 편이다. 상담 세션에 들어가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다. 정말로 아무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내 감정의 막혀있는 부분에 도달하면 말 대신 눈물만 흘리다 나오곤 한다.  결국 그게 근본원인이라면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는 건 아니지만, 두세달안에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방어적이 되는지 상담사에게 -할 말도 없긴 하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갈수록 꺼려져만 가고. 

나는 내 스트레스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힘들고 괴로운데 참는 게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줄을 잘 모른다. 그러다 어느순간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이런저런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고는 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못하니, 여가나 휴식 같은 것도 따로 챙기지 않는다. 처음 병원에서 상담했을 때 나눴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취미는 뭐에요?" "없어요." "주말엔 뭐해요?" "일해요." "언제 쉬어요?" "잘 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근 10년만에 가장 느슨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휴식시간은 낭비라는 생각이 여전히 박혀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이도저도 아닌 채 시간을 흘려보낼지언정 정말로 휴식을 위해 안배하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명상이 떠오른 것이다. 

바로 유튜브를 검색해봤는데, 생각보다 국내에 (종교단체와 관련되지 않는) 명상문화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있는 건 요가 쪽. 제일 적당해보이는 20분짜리 요가니드라라는 명상을 따라해봤다.

생각보다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좋았다. 물론 이건 개인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 모두에게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같은 경우는 단 20분의 명상으로 부정맥 증상이 거의 사라지고, 살짝 답답하던 호흡도 편해졌다. 이후에 며칠째 하루 한두번씩 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호흡이 한결 편안해지곤 한다.

요가니드라는 몸은 수면과 비슷한 상태에서 의식을 각성시키는 명상법이라고 한다. 몸은 이완되어있지만 정신은 깨어있는 상태로, 긴장완화에 효과가 좋다. 진짜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비주의적인 무엇과 대체로 잘 안맞는 편인데, 20분간 영상을 따라 요가니드라 명상을 하고 나면 정말로 머리가 개운하면서도 각성되는 것 같다. 특히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 속는셈치고 한 번 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