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 좋은 신호를 자각했다.
몇 주째 스트레스성 부정맥에 시달리는 중에 자연스럽게 술의 힘을 빌리려는 나를 발견했다. 낯선 패턴은 아니다. 1년여 전의 내 모습. 물론 이건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진다는 신호이다.
우울증의 증상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가 알콜중독에 빠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디까지나 내 경우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내 주증상은 24시간 계속되는 호흡불편감과 스트레스성 부정맥으로 그건 수면시간을 포함해서 신체가 전혀 휴식상태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몇 주에서 몇 달을 긴장상태로 지내다보면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택하게 된다. 자기 전 술 한잔이야 일상적인 일이고, 골목마다 편의점은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결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나에게 알콜 문제가 생길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빨개지고 두통과 매스꺼움이 바로 올라와서 많이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몸이 이완되면서 항상 불편하던 호흡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뒤로 습관적인 음주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약 1년 여간 매일 술을 마시다가 건강상의 문제와 함께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심각한 알콜중독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주했다.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기, 그렇게 마음먹고 실천했고, 간혹 술자리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그 정도는 괜찮았다. 습관이 된 음주의 유혹을 떨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여하간 그렇게 알콜 문제를 해결한 줄 알았다. 그게 1년쯤 전의 일이다.
여전히 간헐적으로 있던 호흡불편과 함께 몇 주 전부터 스트레스성 부정맥 증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 증상에 별 신경쓰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7일 연속으로 술을 찾고 있었다. 알콜이 들어가면 증상이 완화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까,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쯤이면 난 술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뭐가 문제일까.
올 초에는 변형우울증이 진짜 우울증으로 변해서 무기력한 채로 지내다가, 4월부터 슬슬 회복하기 시작해서 이제 막 다시 일이 손에 잡히고 활동량이 늘던 참이었다. 물론 지금의 증상은 내가 과각성 상태일 때 나오는 전형적인 증상들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저강도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수준의 느슨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정신은 이제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걸까. 한 번 너무 팽팽하게 당겨졌던 정신줄이 탄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원래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탄성을 유지하던 때로, 돌아가기는 할까.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병원을 찾기는 찾아야 할 것 같다. 원래 다니던 병원의 원장님이 약을 무척 잘 쓰시는 편이라 만족했지만 그냥 다른 병원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러자니 또 잘하는 병원을 찾기가 쉬운게 아니라서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어서 생각중이다. 근본적으로는 내 경우에 약물 치료는 대증요법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원래 증상이 있으면 약으로 없애가며 살면 그만이라는 주의였는데, 몇 년째 계속되다보니... 아 아니다. 우울증은 약으로 평생 관리해주며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거겠지.
지난번에 명상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2020/07/13 - [우울증투병기] - 명상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심장두근거림/호흡장애/불면증) 며칠 안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것도 나한테는 대증요법이다. 꾸준히 하면 도움이 더 되려나... 일단 당장의 증상은 완화시켜주니까 오늘도 명상을 하고 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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