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로 안좋은 소식을 들은 하루였다.
세상의 무수한 생명들은 언제나 허망하고 갑작스럽게, 그리고 많은 경우 고통스럽게 져버리고는 하므로, 나만 유독 그런 운명을 피해가고자 하는 기대는 버리려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리고 내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 그래서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는 동료들을 다소 냉정하게 바라보며, 나도 생전의 그녀를 무척 좋아했노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티가 나지는 않았길 바란다-.
별 동요 없었다고 생각했고, 그다지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나는 그저 시간을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 끝없이 이런저런 링크들을 눌러대고 있었고, 간만에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목이 조여왔다. 남자친구가 그녀의 뉴스를 꺼냈을 때에는 내 감정도 알지 못한 채 그만 울어버릴 뻔했다.
나는 -실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원래 약간의 회피형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원래 감정을 들여다보기보다 덮어두고 쌓아두는 편이기는 하지만, 갈수록 애초에 감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쌓아두는 느낌이다. 무언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는 순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판단을 내리고, 행동이 필요한 일은 실행한다. 무감하다...고 느끼지만, 사실 내가 억눌러버린 감정은 결국 곧 고개를 들고 내 몸을 불편하게 한다.
이럴 때는 자신을 위한 일을 하나씩 하라고, 누군가 말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든 좋아하는 책을 보든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를 보듬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 그나마 최근에 하나 찾은 건 있다. 신경줄이 너무 팽팽할 때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독주곡을 듣는다. 원래 클래식에 조예나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청중의 온 정신을 사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연주하는 감상용 음악은 명상 비슷한 효과를 준다. 청각에 집중하지만, 생각은 할 수 없다. 이쪽으로 취미를 조금 붙여볼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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